한국과 미국의 기업 문화 차이점

Joshua Kim
12 min readAug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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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오스틴

“해외 취업”이 간절한 꿈이었던 20대 후반, 큰 포부와 깡을 지닌 채 2018년 나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향했다. 1년 반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하루가 도전과 적응, 그리고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무조건 다음의 최면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 누구든지 눈을 마주치면, 인사와 스몰톡 마구마구 내뱉기
  • 나와 낯선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절대로 회피하지 말기
  • 이 나라에 왔으면 이 나라의 문화에 잘 따르기

미국이라는 나라에 엄청나게 강한 몰입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재사회화 고통을 아직도 겪고 있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당시 겪었던 문화와 가치관은 내게 정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절대적인 기간은 짧았지만,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이게 성격을 바꾼 것 같다.

당시 함께 지냈던 Housemates

분명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온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북악산에 올라가거나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갈 때면 “수많은 세상 중 나는 지금 이런저런 특징을 지닌 서울에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객관화하기도 한다. 아마, 한국에서만 살고 있었다면 느끼기 힘든 감정이었을 것이다.

북악산에서 찍은 서울 도심의 야경

이번 아티클에서는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문화적 차이점에 대해 느낀 바를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미국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있고, 한국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각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소속된 집단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철학 전공자로서, 단순한 나의 감각 표상일 뿐 결코 나의 판단은 아니라는 점을 전달 드린다.

첫째) 한국 기업은 쉽게 한계를 그어버린다.

미국 기업에서 인턴 나부랭이였던 내가 가장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은 바로 다름아닌 “자율성”이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네가 자율성에 적응을 못한다고?”라고 말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굉장히 진취적이고 자발적인 성격을 지닌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자율성의 정도가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오곤 했다.

당시 나는 Financial Analyst Intern으로 입사했는데, 당시 나의 보스와 사내 CFO는 내게 간단한 온보딩 정도를 해줬을 뿐 아무런 업무를 주지 않았다.

“적응하라고 시간을 좀 준 것 같으니, 나도 기다려보자.”

라고 생각하며 동료들과 스몰톡을 나누거나, 회사 재무제표를 하나하나 뜯어보거나, 아니면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는 개인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업무를 주지 않아 꺼림칙하게 생각한 나는 보스에게 직접 다가가 “왜 일을 주지 않느냐?”라고 물었고, 보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전달해줬다.

“Josh, 업무를 만들고 정의하는 건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나는 당신이 그 고민을 하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본인을 Intern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마음껏 만들고 실행해봐요.”

이 말을 듣고 아차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다. 한 달 동안 내가 소중한 시간을 낭비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이라도 깨달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계 기준 변경으로 인한 재무 영향도를 분석하며 찍은 사진

그 이후 나는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절반은 동료들과 논의하고, 나머지 절반은 수많은 업무를 떠안고 실행했다. 그 결과 총 세 가지의 업무를 내 영역으로 만들게 되었다.

1) 사내 포트폴리오 데이터를 정리하여, 중요한 통계 결론을 매주 월요일 President를 포함한 전직원들이 참여하는 Staff Meeting에서 발표하기

  • 이 결과, 보스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Josh의 분석 덕분에 대출 심사를 하는 동료들이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어요.”

2) US-GAAP과 IFRS의 회계 기준 변경으로 인한 재무 영향도를 분석해서 CFO에게 보고하기

  • 이 결과, CFO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Josh의 분석 덕분에 내년 재무제표 공시할 때 우리가 선제대응을 하여 감사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3) 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회의에 참여하여 재무에 관한 어드바이징을 해주기

  • 이 결과, Account Manager가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Josh 덕분에 우리가 좀 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어요.”

당시에는 “나는 인턴 나부랭이인데, 내가 회사에 이렇게 많이 관여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많아 두려움이 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 회사의 모든 재무 데이터를 다 분석하여 길잡이가 되주는 사람이다”하며 당차게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Proactive하게 지내다보니, 내게 다가와 부탁을 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로 잡아물고 일을 처리해줬고, 사실 잘 모르는 일이더라도 몰래 치열하게 공부하여 일을 해결해준 적도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스가 좋게 봐줬던 것인지, 사내 최초로 영주권 프로세스를 진행해주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 정중히 거절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 바로 국내 기업에 취업을 했고, 처음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바로 “나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나도 쉽게 그어버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도 그렇고, 동료들도 그렇고 “나는 X년차라 이 일을 도맡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너는 아직 그걸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각 기업의 특성상 정말 연차가 중요한 팩터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한계를 그어버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종종 필요 이상으로 각 개인과 기업의 잠재력을 얽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나이가 더 들다보니, 나보다 경험이 적은 분들의 시각과 뷰를 들으면 “아, 이 분은 아직 시야가 충분히 넓지는 않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에게 이 일을 맡기면 안되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업무는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완수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지, 단순히 연차와 경험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차가 적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떠맡게 되었을 때, 연차가 많은 사람의 어드바이징과 뒷처리가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잘 대처해주기 위한 시니어의 역할인 것이지, “주니어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게 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연차가 적다고 한들,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누구를 찾아가서라도 조언을 구하며 완수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업은 이렇게 쉽게 자신과 타인의 능력과 연차에 대해 쉽게 한계를 그어버릴까? 조선 성리학의 영향과 군사 시절의 잔재, 휴전 상태 등 수많은 문화와 역사의 배경도 있을 건데, 나는 그 외에도 한국의 “시장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은 소위 없는 시장이 없다. 따라서 사업을 펼치거나 자신의 전문 영역을 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한국보다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만큼 어떤 일을 하든 경제력을 갖출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이 직무는 시장 트렌드상 밥 먹고 살기 힘들어. 이런 사업영역은 돈을 벌 수 없어.”라는 생각은 결코 지배적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시장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 점이 결국 사람들의 포부 크기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어떤 성공담과 영웅 스토리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이니까 저게 가능한 거지”, “그 사람은 타고난 게 있으니까 저게 가능한 거지”하며 받아들이고 마는 것 같다.

둘째) 나이로 기강을 잡는다.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다보면 쉽게 목격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이로 기강을 잡는다는 것”이다. 회사에 신규 입사자가 합류하여 사내 교육을 받거나, 혹은 다른 팀과 처음 대면을 할 때 은연 중에 한 쪽이 나이로 기를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평적인 문화가 조성되거나 “님”조차 생략한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 회사에서도 이런 경우가 제법 많다.

물론 이런 언행을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주도권을 지키려는 마음을 나쁜 행위로 몰아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하나의 전술이랄까.

하지만 미국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핵심에 집중했다. 즉, 나이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 경험”으로 기강을 잡았다. 당시 내 보스는 나와 나이가 고작 4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지만, 기업의 핵심 인력 중 하나였고, 내가 퇴사를 한 후에는 C-level로 승진했다. 그 기업은 결코 작은 규모의 회사도 아니었고, 주위에 40–50대 직원들도 꽤 많았던 만큼 결코 사람이 적어서 어영부영 C-level로 승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팀 미팅에서 그녀는 항상 기강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나이가 아닌,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들려주거나 가끔은 그걸 show off하여 설득력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전 성공 경험을 토대로 반박을 해가며, 그렇게 치열하고 시끄러운 논쟁 끝에 누군가의 의견이 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되어 팀 업무의 방향이 정해졌다.

결국, 해당 업무를 누가 경험해봤고 성공을 해봤는지 여부가 미국에서는 설득력과 주도권을 만들어가는 주요 요소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나이와 연차” 영역이 훨씬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가끔 한국 기업에서 40–50대 분들이 20–30대 직원들을 “애들”이라고 워딩을 하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그리고 동등한 위치에서 디스커션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애들”에게 꼭꼭 씹어먹을 수 있도록 의도하는 소통 방식을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업무의 혁신, 개선 방향, 효율성과 안정성을 막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결국 기업이 성과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력을 통해 성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연차가 많다고 해서 구체적인 업무 하나하나 모두 다 결정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데이터 업무에 대한 짬이 조금씩 많아져 가는 상황, 그리고 8년차인 상황에서 1–2년차 분들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아, 내가 그 점을 생각 못했구나”하고 느껴 내 방식을 수정해 갈 때가 많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분들 중 정말 내실이 있으시다면, 나이로 기강을 잡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성공 경험을 통해 설득하려 하신다는 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자신보다 연차가 적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을수록 나이로 기강을 잡는 데 혈안을 두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 기업은 나이에 걸맞는 언행을 지녀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내 주변 동갑내기 친구들을 종종 만나다보면, 점점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걸 느낀다. (물론 나도 그렇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이 때는 아저씨 같지 않게 장난꾸러기였는데…

그런데, 겉모습이 늙어서 아저씨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언행과 표정이 “난 아저씨다”라는 게 느껴져서 아저씨로 보인다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나이가 많은 분들을 보면, “나는 나이가 많다”라는 스탠스를 깔고 가시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분과 사담을 나누다보면 “아 이 분은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들과 같이 계실 때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라는 촉을 느낄 정도로, 지금 내가 바라보는 그 분의 모습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 컨셉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즉, 가오를 잡는 것이다.

20–30대 분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어려보이네요”라는 말을 통해 얕보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나이 많은 척 가오를 잡으려고 애쓰는 분들도 꽤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나이로 가오를 잡으려는 개인의 노력은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쓰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나이로 가오를 잡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력과 성공 경험으로 가오를 잡는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을 Arrogant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소위 겸손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프로페셔널 영역을 어필하며 이 영역을 차곡차곡 자신만의 스토리로 쌓아간다. 즉, 회사에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직접적인 영역에서 가오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성과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나이”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도 종종 안부를 주고 받는 내 보스, CFO, 그리고 각 Individual Contributors 모두 나와 직급과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스몰톡 시간을 보낼 때는 마치 동갑내기 친구 처럼 팝콘을 서로에게 던져가며 “애들”처럼 지낸다.

결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 기업에 대한 못마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기업에서는 외로움을 참 많이 느꼈다. 가족, 친구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그 감정이 깊어진 것도 있겠지만, 미국은 가족 중심 사회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국에 비해 상당히 피상적이다. 즉, 스몰톡은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대화와 정의 깊이는 한국에 비해 얕다고 느꼈다.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축구선수 기성용이 “나를 원하는 팀이 빅클럽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어떤 나라든, 나를 원하는 팀과 기업,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로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이 내게 빅클럽이고, 그곳에서 내가 월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누군가를 나이로 밀어붙여서 내 의지를 관철시키며 살면 한국에서는 편한 직장인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결코 실질적인 리더십을 만들지도 못할 뿐더러,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무도 내게 피드백을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결국 내 성장은 굳게 닫혀 버릴 것이고, 회사에서도 좋은 성과를 만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장점과 미국의 장점을 골고루 섞을 수 있는 직원, 팀,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큰 이상향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달성 가능 여부를 떠나, 내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찾은 데이터 분야, 이 애정하는 분야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든 월드 클래스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올바른 인플루언서가 될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옛 스승, 훌륭한 동료 분들로부터 받은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이 그런 길이기에.

그리고 현실 안주를 모르는 내가 하루하루 고통스럽게만 사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조금씩 성장하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삶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느꼈던 내 포부를 계속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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